Book/Fun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침닦는수건 2023. 2. 20.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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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게 된 계기

지식을 얻기 위한 책들을 쭉 읽어오다가 최근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심판을 읽었을 때 느껴졌던 기분이 안 잊혀졌다. 투자나 자기 개발에 관한 책들을 읽다가 소설을 읽으니, 글이 묘사하는 장면을 제대로 상상하지 못하더라. 너무 머리를 한 방향으로만 쓰니 다른 방면의 머리가 죽는구나 싶었다. 다행히 책을 조금 더 읽다보니 조금씩 장면을 상상하는 능력이 돌아오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다른 글들도 종종 읽어줘야 겠구나 싶었다. 더불어 소설을 읽을 때 머리가 쉰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마치 잠을 자려고 이런 저런 상상이나 하면서 누워있을 때 드는 느낌을 소설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한 주가 너무 고되어서 더 이상 머리를 쓰고 싶지 않을 때 소설을 찾게 되었다. 

 

많은 소설 중 김초엽 작가님의 글을 고른 이유는, 요즘 떠오르는 작가라는 사실 혹은 베스트 셀러라는 사실보다는 포항 공대 동문이라는 친밀감이었다. 학번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학교 다닐 때 직접 이야기를 해본 기억이 없지만 그래도 이름은 한 번 정도 들어봤던 기억이 있다. 수상 소식을 통해서가 아닌 친구나 선배의 입을 통해서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왠지 모를 신기함과 같은 공대지만 다른 길을 가는 것에 대한 멋짐이 마음 속에 피어나 이 글을 고르게 되었다. 

 

또 하나는, SF 소설이라는 점이다. 이전에 내가 생각하는 SF 소설은 그저 상상력을 발휘한 판타지에 가까웠지만 과학 기술계의 창의력의 상당수가 SF 소설에서 왔다는 역사적 사실이 내 관점을 조금 바꾸었다. 닐 스티븐슨의 소설에 등장한 메타버스가 요즘 가장 많이 인용되는 사례이지 않을까 싶다. 구글의 오너도, 테슬라의 오너도 SF 소설을 읽는 것을 적극 권장한다는 말도 있다. 어쩌면 내가 판타지로 치부해버리는 것들이 생각보다 중요한 것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골랐다.

 

짧은 평

술술 읽혔다. 일반 소설과 달리 상상으로 만들어 낸 내용들이 주로 등장하기 때문에 확연히 인상부터 달랐지만 한 편의 게임 화면이나 영화 화면을 상상하는 것과 같아 재밌었다. 시초지에 대한 단편을 볼 때는 어릴적 했던 게임에서 보았던 화면들, 스펙트럼을 읽을 때는 최근에 본 아바타:물의 길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을 때는 인터스텔라가 떠올라 머릿 속에 생각보다 생생한 장면들이 떠올라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용 자체에서 내가 느낀 것도 분명 있지만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상상한 것을 이렇게 글로 잘 엮어내는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상상을 할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이나 마법과 같은 것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상상에 서사를 붙이고, 메세지를 담아, 글로 잘 느낄 수 있도록 연출하는 것까지를 생각한다는 것이 정말 천재적인 것 같다. 특히나 기술이나 배경, 세계관을 상상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등장하는 인물이 갖고 있는 생각과 감정, 그리고 대사까지 상상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수준인 것 같았다. 작가도 한 사람인데 글 중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이 마치 실제 인물인 양 상상해서 대사를 지어내고, 행동을 만들어 낸다는게 대단했다. 내가 나 하나도 알기 어려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알고 그 입장에서 생각해봤어야 이런 인물의 감정, 행동 상상이 가능할까... 어떻게 보면 창의력 부분에서 극한을 달리고 있는 사람은 어떤 엔지니어도 아닌 작가가 아닐까 싶었다. 나한테 충분한 시간을 주고 이러한 상상을 해볼 수 있겠냐고 한다면 감히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방대한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작가도 처음부터 전체를 정확하게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엔 작은 질문 하나나 궁금증 하나에서 시작했을 것인데, 그 질문에 살을 붙이고 점점 커다랗게 키워나가는 것이 한 땀 한 땀 예술 작품을 빚는 것처럼 보여 글이 오히려 더 예술과 같이 느껴졌다. 작가가 지성인의 표본임과 동시에 예술인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 작가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꼭 이야기 나누어보고 싶어졌다. 

 

하나 아쉬운 점은, 글의 뒷이야기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작가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리고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메세지를 전달하기 좋다고 생각했기에 멈춘 것이었겠지만, 뭔가 뒷 이야기가 더 궁금한데 끝나버리는 느낌을 받은 작품이 몇 개 있었다. 내가 이 책이 단편의 모음집인 줄 모르고 장편인 줄 알고 읽어서 인지 아쉬움이 남았다. 오히려 길었다면 맛이 안 살았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내용이 재밌어서 글이 짧아 아쉬웠다. 혹 나중에 장편을 다룬다면 한 번 읽어봐야 겠다. 

 

이 책은 내용도 재밌게 보기 좋지만, 뭔가 작가가 나와 같은 공대 출신의, 사실은 작가와 거리가 먼 출발점에서 출발한 작가라는 사실 때문인지 어떻게 작가가 되었을까를 생각하면서 읽게 되어서 좀 더 의미가 있었다. 이 책은 별 4.5개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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