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제목만 보고 뭔가 살아가면서 사소한 것들을 잊지 말자는 그런 얘긴 줄 알았는데, 최근 개봉한 영화의 원작 소설로 아일랜드의 실제 막달레나 세탁소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라고 했다. 처음에 모르고 읽었을 때는 그냥 소소하게 딸두고 살아가는 아버지의 일상을 담은 소설인 줄 알았는데 후반부에 뭔가 급격히 분위기가 반전되는 것을 보고 뭔가 내가 잘못 알았구나 싶었다. 그래서 찾아보니 막달레나 세탁소 이야기는 꽤나 참혹하고 잔인한 역사적 사실이어서 더 놀랐다.
짧은 평
막달레나 세탁소는 18세기~20세기 거의 200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아일랜드 정부가 가톨릭 교회랑 협약을 맺고 타락한 여성들을 정화한다는, 마녀 사냥 같은, 명목 하에 생긴 시설이라고 한다. 거의 9000명에 달하는 여아들이 죽은 공간이고 이곳에 갇힌 여아들 뿐만 아니라 이 여아들이 낳은 아이들도 전부 사생아가 되어 힘든 인생을 보냈기에 사실 끔찍한 시설이다.
이 책에서는 그 배경을 그대로 가져와, 다섯 딸을 둔 아버지가 막달레나 세탁소의 여아를 보고 겪는 심리 변화를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아버지인 주인공과 아내, 주변인 모두 초반에는 우리의 일도 아닌데 무시하라, 엮이지 말라, 그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이 아니라는 식의 태도로 일관했지만 결국 주인공은 양심에 따라 여아를 돕는 선택을 내린다. 나중에서야 본인도 사생아 출신이었음에도 상황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모른 척하려 했음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끝난다.
내용 자체는 약간의 소설화를 더했을 뿐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담은 것이기에 "재밌다"라는 표현과는 거리가 멀다. 내가 의미있다고 생각한 부분은 심리 묘사와 심리가 변해가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무엇이 도덕적인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와 같이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흐름이다. 자칫 정부와 가톨릭 교회에게 등돌려 본인이 그리고 다섯 딸들도 위험에 처하게 만들 수 있는 상황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 어디 쉬웠을까. 무시했어도 결코 누구도 욕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양심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싶다. 바른 인간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하는게 맞을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핵심인 작품 같다. 마무리에 주인공이 다섯 딸을 얻었을 때에 비할 행복감을 느꼈다고 적은 것을 보면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돕는 인생을 사는 것이 옳다 쪽으로 의견을 전하는 것 같다.
요즘 나도 나와 내 가족이 앞으로 어떻게 안전하게 살 지에 초점을 맞추어 다소 이기적으로 살아야 되겠다고 다짐할 때가 있는데 한 번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라 좋았다. 우연히 읽었지만 지금 나의 마음가짐에 질문을 던지는 좋은 책이었다.
'Book > Fu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쓸 만한 인간 (0) | 2024.12.15 |
---|---|
삼체 1 : 삼체 문제 (0) | 2024.08.18 |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0) | 2024.03.22 |
내 몸의 설계자, 호르몬 이야기 (0) | 2023.09.20 |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0) | 2023.09.20 |